날이 갈수록 오르는 등록금과 끊임없는 경쟁 속에 하루하루가 힘겨운 대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배움의 터’를 마련해 학생들에게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 바로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제도권 대학의 획일화된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저항을 넘어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설립된 학교로 생태·공동체·인문학 중심의 대안 교육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그곳을 찾았다.

지역공동체학교로 뿌리내리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풀뿌리사회지기학교는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대안대학이다. 신행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학교지기(교장)로 있는 이 학교 1층에는 복합문화 카페인 ‘체화당’이 들어서 있으며 카페를 담당하는 학생이 이곳을 맡아 일하고 있다.
체화당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5~6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 3개와 10여명이 모여 토론할 만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 2005년 초 1기 수업을 시작으로 모두 11기의 ‘배울이’들을 받아온 이 학교에는 현재 총 10명의 학생이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
“배우는 이가 주체가 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기존 대학에 회의를 품거나 지역공동체 운동에 대해 관심이 있고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풀뿌리학교의 교육과정을 듣고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를 닦는 성찰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황정화 풀뿌리학교 간사(교무지기)는 대안대학을 다니면서 스스로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일반대학과 다른 점이라면, 이론적 과정보다는 스스로 하는 학습과정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직접 연구하고 탐색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황 간사는 누구나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해서 의지만 있다면 세상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울이, 사회지기가 되기까지
학생을 일컫는 ‘배울이’들은 한 학기당 두세 과목씩 글쓰기, 성찰적 삶과 사회, 종교와 사회, 다리 밟기 영어, 기타와 밴드 조직 등 다양한 주제별로 1년에 네 학기 강의를 듣는다.
한 수업 당 40만원씩 주 1회 2시간 동안 진행되며 학부는 길 찾기, 터 닦기(기초과정)를 거쳐 사회지기(본 과정)까지 총 3년을 배운다.
이곳에서 배울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현재 80여 명이 있다. 그들을 ‘가르칠이’라고 호칭을 부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래 학생들과 교수가 수업을 받는다.

입학을 위한 시험은 없다. 17세 이상이면 면접을 통해 누구나 배울이가 될 수 있다. 등록금은 120만원으로 한 학기 5과목을 배운다.
길찾기’ 과정에서는 토론 위주로 학습하고, ‘사회지기’ 과정에서는 관심 진로를 지역 사회와 연결시키는 1 대 1 방식의 교육을 실시한다.
이곳의 학생들은 대안 학교 졸업생, 일반 고교 졸업생, 직장인 등 다양하다. 하지만 기존의 제도권 대학의 교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대안 대학을 찾았다는 목적은 같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 대안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업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직업 형태가 다를 뿐이다.
매 학기마다 배울이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인원수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1:1면접을 통해 배우는 것에 대한 뜻과 의지가 있는지 파악한 후, 학생들을 선별한다.
학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 마다 있으며, 여름학기는 이번 6월 셋째 주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취업, 입학 등의 진로를 위한 과정을 듣지 않습니다. 그저 삶의 진정한 목표를 배우고, 학교 졸업 후에 매진하고 싶은 분야를 구체화로 정하여 자신의 기준에서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황 간사는 졸업 후 대안 대학 교사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거나, 대안 학교의 교사가 될 수도 있으며, 생태마을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등 지역 사회에서 보람 있는 일을 스스로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삶과 생명의 바탕
풀뿌리는 삶과 생명의 바탕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 사회로 치면 그 근본을 말한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사회에서 작은 변화를 이끌고 풀뿌리 같은 존재들이 모여 근본적인 단위를 배우고, 뜻과 함께 하는 이들이 삶의 지혜를 배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근본적으로 다른 내일을 젊은이들이 대안학교를 포함하여, 사회변화라는 근본적인 과제나 일들을 현실에서 실천해가는 방법도 풀뿌리의 자세나 정신으로 근본적인 단위들이 공동체를 이룰 때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뿌리와 흙의 만남 같은 사건들이 시작됩니다. 새 사회가 열리는 것이지요.”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지향
한국의 대학은 기존 체계와 제도에 봉사하는데 치우친 나머지 교육의 근본인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로서의 의무, 연구를 통해 인류와 사회의 내일을 여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풀뿌리학교는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각 부문, 지역, 사회를 아울러 장래를 개척하려는 이들을 모으고 이들이 스스로 잊혀지고 익히지 못한 사람과 땅을 지키는 자, 이끄는 세력, 앞장서고 세우는 사건이 되도록 교육한다.
우리 사회와 세계가 지닌 자유, 정의, 평화, 생명의 정신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큰 도시들의 퇴락해가는 위성지역들과 사회 여러 기능들의 풀뿌리 부문들 그리고 농어촌 지역들과 제3세계 지역사회를 소생시키기 위해 중앙을 대신하거나 들러리로 충원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지도력으로, 또한 미래를 여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풀뿌리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근본을 다시 놓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풀뿌리에는 위아래로 나뉘어져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수-학생의 관계가 없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같은 근본을 이룬다’라는 열린 관계가 서로를 읽게 한다. 어깨를 나란히 비슷하게 띠는 발걸음이, 일그러진 사회의 근본에 스며있는 정체성의 씨눈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우리학교의 진면목을 새싹으로 보여준다. 어렵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이뤄 가고자하는 삶,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모두의 다름과 일치를 서로의 마음에 품어주는 삶이 풀뿌리학교의 기초다.
직업인이 아닌, 꿈을 가진 행복한 이들을 만들어가는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대학 사회에 ‘배움의 행복’이란 참뜻을 일깨우고 있다.

<미니인터뷰>

“친환경적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생태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인 하수용씨(23)씨는 중학교 대안학교,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반 대학에 가지 않고 목수 일을 해오는 등 일반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같은 꿈을 키워가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 지난 2009년 9월 풀뿌리 학교로 입학했다.
“인문계 고교를 나와 처음에는 남들처럼 일반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대안 대학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는 그동안 자전거 여행, 아시아 여행 등 자유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행복한 생태 공동체, 관계가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고 ‘차세대 마을 일꾼’이 되기 위해 풀뿌리학교에서 생태관련된 학습과정을 배우고 있다.
하 씨는 “처음에는 막연하게 생태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싶다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훨씬 구체적인 상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대한 학생 개인에 맞춰 관심사를 들어주고, 걸맞은 강사분을 섭외해 수업을 개설해주니 공부도 많이 되고 좋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만 배우고 졸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하 씨는 졸업 후 생태 건축을 구체적으로 배워 공기 좋은 지방으로 내려가 흙집을 짓고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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