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갈수록 노년층이 확대되면서 노인들에 대한 복지는 최우선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 가운데 노년층의 소비문화를 새로이 창조하겠다고 나선 (사)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상임대표 제재형)이 있다.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마패시민감시단’

노년층도 소비자다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0.3%에 이르는 가운데 신체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노년층을 상대로 일부 악덕업자들이 효도관광, 방문판매, 다단계 등을 통한 불법·부당한 판매행위가 빈발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권리의 사각지대인 노년층을 위해 ‘노년 소비자’ 개념을 확산시키고 이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이하 한노연)이 지난해 7월 공식 출범했다. 이들은 비정부 민간단체(NGO)로서는 유일무이한 노년소비자 보호 법인으로,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다.
한노연 노정호 사무총장은 “어르신들이 무슨 돈이 있느냐 혹은 무슨 소비자이냐 식의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면서 “우리 단체는 이것을 사회 틈새의 문제라고 인식했다”고 창립 배경을 설명했다.
단체는 현재 본부가 자리한 서울 영등포를 포함해 경기·충청 등 3개 지부를 발족하고 노년소비자의 기본권익 보호, 소비생활의 향상과 합리화를 통해 노인들의 ‘사회적 기본권 확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연구하며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특히 ▲노년 소비자 피해예방 ▲노년 소비자 상담서비스 ▲노년 소비자 보호 연구 ▲실버산업 모니터링 및 감시단 운영 ▲우수 친고령화 상품 인증사업 ▲노인복지 및 노년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제안 및 입법 촉구 등 노년소비자 보호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한노연은 이를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대시켜 노년소비자 전문단체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힘쓰겠다는 각오다.

노년소비자 위한 전담기구 절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소비자시장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증가했다. 그만큼 기만상술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노인들은 피해 해결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실제 피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공짜 효도관광을 시켜준다거나 경로잔치를 연다면서 고가의 상품을 강매하는 사기 상술, 노인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의료보조기구를 판매하는 기만상술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다. 전국에 운영되는 홍보관 수가 5000여 곳에 달한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사항이다.
홍보관이란 일시적으로 건물을 임대하여 상품을 홍보 판매하는 장소로 주로 밀가루, 휴지, 설탕, 농산물 등을 공짜로 준다고 홍보하거나 무료 공연 등을 해준다고 노인들을 유인하여 저가건강식품등을 고가에 판매하는 영업활동을 하는 곳이다.
지난 2008년 10월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평균 약 5000개소로 추정되고 있으나 노인대상 홍보관 등은 미신고업체가 많고 몇 개월 주기로 수시로 이동하여 그 영업실태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이곳은 주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주로 현실에 둔감한 노인계층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노정호 사무총장은 “노인들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홍보관을 찾게 된다”면서 “그곳에선 온갖 미끼상품들이 오고가며 노인소비자들에 얇은 주머니를 털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소비자 권리의식이 희박하고, 해약절차를 잘 모른다는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무조건 제품을 떠맡기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노 총장은 “노인들이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분별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며, 노년층의 급속한 증가와 이들이 각종 연금제도, 소득증대 등 경제력도 증가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년층의 학력과 인식이 변화하면서 사기행위도 점차 지능화, 고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요령을 모른다는 것. 법적 내용증명이나 의사표시 문서화와 같은 것은 젊은층에게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년 소비자만을 위한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총장은 “정부기관의 정책과 보호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족·시민단체·국가의 삼위 일체적 배려가 필요하다”며 “특히 기존 소비자 시민단체들이 피해 노년소비자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부수적인 활동에 그치고 있어 노년 소비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늘어나야한다”고 설명했다.
경제력이 부족한 노인들의 사기 판매 피해는 가정불화로까지 연결되어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까지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정책적 노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노년 소비자 및 노년 소비자와 함께 하는 가족들이 피해 예방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노 총장은 “가족이나 사회와 정보 교류 없이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주요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노인들이 자신들도 소비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로서의 주체 의식 드높여
한노연은 노인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소비자교육을 실시하는 등 피해예방을 위한 계몽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상담서비스를 위한 콜센터와 피해구제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마련된 ‘마패 시민 감시단’은 노인 스스로 소비권익보호를 위해 소비자인 동시에 감시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약 500명으로 이루어진 감시단이 각 지방마다 현장방문을 하여 불법· 범죄행위에 대해 고발조치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들 감시단은 건강보조식품 및 가정용 의료기기들을 생산·판매업체, 실버산업체, 요양기관 등을 대상으로 사기판매(모집)행위, 과대광고 등 법규를 위반하는지 여부에 대해 감시활동을 하며, 그 정도가 심할 경우 해당기관에 고발한다. 노 총장은 “우선 업체 진위를 파악하고 내용을 확인한 후 노인과 업체의 화해를 권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에는 업체를 고발해서 노인들의 피해보상을 유도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한노연은 경로당이나 노인회관을 찾아 주의·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 노인들 스스로 주체적인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단체에서는 여태껏 진행해온 많은 교육 활동을 토대로 체계화된 교육 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노 총장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가장 중점으로 삼고 있다”라며 “감시체제도 중요하지만 노년층과 판매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대 간 소통이 주요 과제
한노연은 노년 소비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의식성장 및 삶의 방식에 변화 발전을 이끌어 낸다는 미명하에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동체 정신과 연대 정신에 기반 한 가치관을 확산하고자 ‘노인건강걷기대회’를 기획했다.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인한 노인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에 이러한 행사는 그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노 총장은 “대회 참여를 통하여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능력을 향상시키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켜 건강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서 “행사를 통해 노년 소비자들의 권익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노연에는 원희룡·강창일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이 자문위원으로, 이종훈 전 중앙대 총장과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 등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단체는 이들 각계각층의 지도자와 노년 소비자가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는 정례회도 마련하고 있다. 여기서 도출된 의견들은 곧 정부 정책으로 입안될 수 있도록 소통한다는 방침이다.
단체는 이러한 소통이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는 형태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말로만 노인복지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고령화에 맞춘 진화가 필요합니다. 노인들은 공공장소에만 가면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같은 소비자이지만 신체적 정신적 취약함 때문에 노인 스스로 찾길 꺼려하지요. 따라서 공공장소부터 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노연은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함에 있어, 소통을 통한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감으로써 기여하고자 한다.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대안의 하나로 거론된다.
“노년층과 젊은층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요즘에 경로당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들은 젊은 노인들 때문에 찾기를 꺼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 총장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외국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유치원과 노인시설이 바로 맞닿아 있어서 자연스레 노인이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가 노인들의 말벗을 대신합니다. 세대 간 소통이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한노연은 현재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영어마을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협의하고 있다. 노인과 그 손자녀들이 함께 영어를 배우는 등,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적 구조가 돼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노년은 머지않아 만날 나의 얼굴
한노연은 능력 있는 노년의 ‘재활용’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 노인은 예전과 달리 학력이 높고,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전국 6만여 경로당을 한문·일어 등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바꾸고, 노인들 대상의 재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또한 노령화 시대에 적절한 정책 제안 및 입법 촉구 운동을 통해 ‘노인이 함께 사는’ 사회문화를 정착시키는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노인복지 수혜자는 겨우 50만 명 정도예요.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가 750만 명인 상황을 두고 보면, 무려 700만 명이 방치된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고령화는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고 미래에 닥칠 나와 가족의 일이기 때문에 전 국민이 참여해야 할 운동이라는 것이 단체가 강조하는 바이다.
노 총장은 “우리는 지금껏 노인을 단순히 공경의 대상, 복지수혜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면서 “노년 소비자를 우리 사회의 소수 노인들의 문제로 치부해왔다면, 이제는 그들이 당당히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늙어봤냐? 우리는 젊어 봤다!
지금의 노인들은 일제침략과 남북전쟁을 거쳐 산업화·민주화를 이룩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국격(國格)을 드높인 대한민국의 역사적 주인공들이다. 숱한 세월동안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신해온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늙어봤냐? 우리는 젊어 봤다! 늙기도 서러운데 결단코 속고 살수는 없지!”
한노연은 계속해서 노인들이 건강과 심신의 안전을 누리며 취미, 오락 생활을 통해 황혼의 모년(暮年)까지 행복한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악덕 기업들의 상술로부터 보호하고, 이를 범국민적 운동으로 넓혀갈 작정이다.  

배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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