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6시면노인들의편안한말벗이되어주고는 홍성기씨.아름다운인생을통해그는노인복지,생활정보,일자리,오락등과같은실질적인문제를같은노인의입장에서조언한다

“내가 살아왔던 것을 다음 생에서 그대로 받는다 생각하면 오늘 하루도 더욱 소중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편안하게 주무셨는지요. ‘아름다운 인생’ 시작합니다.”

지난 4월 2일 오후 다섯 시, 서울의 소출력 지역 라디오 방송인 마포FM(100.7MHZ) 스튜디오 안. 프로듀서(PD)의 방송 시작을 알리는 ‘큐’싸인이 떨어지자 노인대상 프로그램인 ‘아름다운 인생’ DJ 홍성기(71)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읽어 내려간다.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몇 차례의 실수를 연발하지만, 그의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매일 아침 6시면 노인들의 편안한 말벗이 되어주고 있는 홍성기 씨. ‘아름다운 인생’을 통해 그는 노인복지, 생활정보, 일자리, 오락 등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같은 노인의 입장에서 조언하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삶의 열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그. 한마디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소출력 라디오가 가져온 아날로그 풍경

“세탁소 김사장님, 철물점 박사장님 얼른 외상값 갚으세요.” “운전면허증하고 태권도 단증이 있는데 취직좀 시켜줘요.” “집 나간 우리 아빠, 어서 돌아와요.”

라디오 방송 출연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방송사고’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서로 잘 아는 마을 사람들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시골 마을에 자체 라디오 방송이 생긴 후의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 ‘라디오스타’. 이 영화를 연상시키는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이 서울에도 있다. 올해로 개국 1년을 맞은 마포FM(100.7㎒). 올해 일흔 한 살의 홍성기 씨는 이 방송국 ‘아름다운 인생’ 코너의 실버 DJ다. DJ를 하기엔 다소 늦은 나이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말솜씨와 번뜩이는 애드립으로 그는 이미 방송국 사이에서 ‘라디오스타’로 통한다.

자신의 몸을 건사하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나이에 그가 DJ를 시작한 연유는 무엇일까.

“젊었을 때부터 라디오에 관심이 많았어요. 편안한 목소리로 진행하는 DJ를 볼 때면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라디오 욕심은 절대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방송국과 인연이 닿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가 좋았다는 그는 ‘라디오 키즈’라 불릴 만큼 라디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홍씨에게 라디오 진행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아름다운 인생’은 DJ인 홍씨와 실버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다. 사회봉사활동 등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들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끼’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동네방송으로 불리는 마포 FM은 마포 지역에만 송출되는 지역방송이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기획에서부터 취재, 방송, 행정까지 모든 업무를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움직인다. 물론 홍씨 또한 무보수 자원봉사자다. 방송은 매주 월요일에 녹음하면, 그 다음 주 새벽 6시부터 한 시간씩 방송된다. 출연진 모두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나지만 이들의 열정만큼은 프로급이다. 또, 새벽잠이 없는 실버 청취자들에겐 그 어떤 방송보다 깊은 공감과 큰 울림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같은 노인의 입장에서 청취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진심이 통했는지 가끔 팬레터도 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방송을 잘 듣고 있다는 감사의 인사를 들을 때 마다 더욱 책임감을 느껴요.”

출연자 섭외, 음악 선곡 직접 담당해

노인생활에 활력을 주는 다양한 내용의 진행 외에 그는 프로그램 시작 전 5분간의 오프닝 멘트에 심혈을 기울인다. 대체로 시대에 따라 노인상도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 내용을 작성하는데 고심을 거듭한다고.

“방송에서의 머리말은 얼굴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멘트를 짤 때마다 식상하지 않게 책이나 좋은 문구를 인용하고 있어요. 우리 방송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유익한 내용을 청취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멘트는 주로 노인대학이나 방송에서 강의했던 내용들을 기초로 그가 직접 만들고 있다. 이외에도 출연자 섭외나 음악선곡도 직접 담당하는 만능 일꾼이다.
그가 표방하는 라디오 철학은 ‘양다리’다. 비록 지역방송이지만 실버 청취자들에게 교양과 재미, 정보와 즐거움을 동시에 전달하는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매일 노인들에게 신선한 소재를 제공할까 제작진과 고민한다.

칠순을 넘긴 홍씨가 또렷한 발음과 편안한 진행, 구수한 입담을 선보인 데는 과거 방송경력이 도움됐다. 그도 그럴 것이, KBS, MBC 노인관련 프로에서 강의도 했고, MC도 여러 차례 맡았다. 또 30년 노인대학 경험에서 나온 해박한 지식은 그만의 강점이다. 

현재 서울노인대학 학장이면서 연희유치원 원장, 한국노년문화교육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노인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마다않는 열정파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일년에 한번 전국 노인을 상대로 공연과 강의를 하고, 국외로는 ‘한중일 국제 교류 친선 노인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처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 자체가 아름다운 인생이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아름다운 인생은 무엇일까.

“나이들수록 자신감이 없어서 수동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수록 자기 인생을 스스로 계발해야 합니다. 작게라도 계획을 세워 조금씩 실천해 나가다보면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또한 그는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찾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건강관리에 가장 유념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노후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어요. 돈이 없어도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돼요. 때문에 한방·양방 건강정보와 기체조 등 건강에 관한 내용은 빠지지 않고 방송하죠.” 

노인복지정책 길잡이 역할 하고파

그의 바람은 욕심과 다르게 소박하다. 실버 청취자들이 그의 방송을 듣고 조그만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은퇴한 노인들은 자신이 이제 쓸모없다고 생각해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수록 더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노인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죠.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많은 노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는 힘닿는 한 DJ 봉사를 계속 할 계획이다. 또, 지금처럼 노인을 위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인복지정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췄다.

부정적인 생각만 버린다면 무엇이든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말하는 홍성기 씨. 행복한 노년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한 말일까. 누구보다도 값진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풍성한 노년의 소중함이 어떤 건지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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