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열정_김행균 씨

지난 2003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다. 선로에 떨어지는 아이를 구하다 진입하는 열차에 두 다리를 잃고 만 철도원 김행균(46)씨.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철도원’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는, 당시 우리 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어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에 진한 온기를 불어넣었던 이 이야기는 어느덧 4년 가까이 흘렀지만  그동안 김행균 씨의 행보는 매스컴을 통해 꾸준히 전해져왔다. 6개월 전 부개역 역무과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찌감치 ‘삶과 열정’의 다음 주자로 낙점했더랬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투지도 투지거니와 사고 후 인터뷰 어디에서든 “꼭 다시 현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삶과 열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지금, 얼마나 긴 철길을 달려 어디쯤에 와 있을까. 다이어리의 전철 노선표를 펼쳐보며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정류장에 작은 동그라미를 쳐본다.

진짜 발이 된 의족, 생에 대한 감사로 다가와
“네, 행복을 드리는 부개역 김행균입니다.”
동장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월 중순, 섭외를 위해 건 전화선 너머로 기분 좋은 인사가 전해왔다. 수시로 타고 내리는 전철을 두고도 행복을 얘기하는 사람, 흔한 인사말이지만 진짜로 행복을 나눠받은 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오전근무를 하는 요일에 맞춰 부개역을 찾았다. 도착시간에 맞춰 미리 역내사무실 앞까지 나와 정중히 취재진을 맞아주는 모습에서 한 역을 책임지고 있는 역무과장으로서의 면모가 엿보였다.
인터뷰 장소로 안내하는 그의 뒤에 서자 조금씩 단절된 걸음새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절고 있었지만 장애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안정적인 몸놀림에 조금 놀랐다. 제복과 구두 속에 가려있을 의족이 그려졌다. 조심히 의족의 불편함을 묻는 질문에 대뜸 신발을 풀어 의족을 보여주는 그를 보니 작년 이맘때쯤 찾아간 특수화 전문 구두장인의 말이 생각났다. 행균 씨의 신발을 손수 제작했던 구두장인은 그를 두고 “그 사람 참 성격 좋아” 했다. 원체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에 스스럼없는 성격이라 어느새 호형호제하게 됐다며. 그 말처럼 참 ‘무던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수시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출퇴근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단련한 끝에 그의 다리는 이제 한두 시간은 쉬지 않고 걸어도 될 만큼 근력이 붙었습니다. 처음에야 고생 좀 했지만 지금은 다니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예요. 치료는 진즉 마치고 이제는 약도 안 먹어요. 먹는다면 가끔가다 박카스 한 병 정도? 하하하.”
대수술만 7번을 하고도 끝내 접합수술에 실패해 의족을 달아야 했던 다리부상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건만 대답 어디에서도 그늘 따위는 없다. 삶의 고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고비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 사고 후 치료과정이 조금 힘들었다”고 말하니,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긍정의 힘이 무엇보다도 강하게 그를 지탱해준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었다.
“당시 접합수술이 성공한줄 알았거든요. 그러다 절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때가 제일 힘들었죠. 하지만 고비라고 할만 한 건 아니었어요. 장애를 갖게 되긴 했지만 더 크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 다행이었죠. 저보다는 아내와 어머니가 더 힘들어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하지장애를 안게 된 자신의 고통을 이렇듯 작은 상자에 봉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일찍이 생과 사를 접하게 했던 직업적 영향도 컸다. 철도원으로 일하다보면 안전사고로 순직하는 동료나 생활고 비관 등을 이유로 철로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때마다 뒤처리를 해오면서 행균 씨는 삶과 생명에 대한 남다른 성찰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선로에 뛰어들 정도로 삶이 벼랑 끝에 밀리지도, 또 불시의 사고로 목숨을 잃지도 않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삶의 자세도 분명 그런 경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승객과 함께하는 지금이 좋아”
그가 맡은 역무과장직은 직원관리는 물론 안전관리, 승객서비스 점검, 민원처리 등 역내 구석수석을 살펴야 하는 살림꾼의 자리다. 현장에 돌아오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치료과정 1년 만에 서울지역본부 사무직으로 복직했던 그였지만 2년간의 관제업무 동안에도 현장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불편한 다리를 배려한 사측에는 고마웠지만 본디 승객과 대면하는 현장이 더 기질에 맞나 봐요. 한동안 몸이 근질근질했죠. 아무래도 내근만 하는 것보다는 더 힘들지만 손님을 상대하는 최일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하루 24시간 풀가동하는 직업의 특성상 주야로 3교대 순환근무를 한다. 출근해서는 직원근태관리, 문서정리, 민원처리를 해가며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휠체어에 탄 승객이 있을 때면 후다닥 달려 나가 매표에서부터 승차까지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돕는 것도 그의 일이다. 낮밤이 바뀌기 일쑤인데 불편한 다리로 힘에 부치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철야로 24시간 근무하던 예전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단다. 마흔여섯의 우직한 소띠 기질이 물씬 풍겨났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역내 순찰을 돈다. 수시로 역내를 살피며 혹여 플랫폼을 헷갈리는 승객이 없는지, 파손되거나 더럽혀진 시설물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역내에서 마주치는 청소아주머니에게는 달라진 파마머리를 칭찬해주고, 옥외매점 앞을 지날 때는 주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알은체를 한다. 그가 피워내는 부개역의 작은 온기다.

 그 모습이 이야기 하듯 그는 자신이 몸담은 이곳, 철도인생이 좋다. 어렸을 적부터 오로지 철도인이 되길 꿈꾸며 일찌감치 철도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했을 정도로 행균 씨의 인생에서 다른 길, 다른 직업은 없었다. 군대에 다녀온 3년을 제하곤 꼬박 23년을 그렇게 철도와 함께 시민의 발로서 살아왔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이나 철도인으로 살게 하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철도를 보며 컸거든요. 마포 도화동 산동네에서 태어났는데, 근처에 철길이 있었어요. 당인리발전소로 들어가는 유연탄 화물열차가 하루 서너 번 지나갔죠. 옛날에야 뭐 놀 곳이 있나요. 철길이 놀이터였죠. 하루 종일 철길에서 깡통 돌리고 자갈치기도 하고…. 특히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는 열차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목이 아프게 쳐다봤지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열차가 삶의 로망이 돼버린 소년이 그려졌다. 소년은 이제 다 커서 그 이유를 굳이 멋스럽게 포장할 줄을 모른다. 그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배운 게 이것 하나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기실 흘리듯 내뱉은 “쭉 뻗은 레일은 봐도봐도 물리지 않으니까”가 정답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시끄러운 소음을 울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달리는 열차가, 제 시간을 지키며 무수히 많은 승객들의 하루를 실어 나르는 열차가, 행균 씨는 좋은 것이다.

이 모습 그대로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행균 씨는 직원들이 바쁠 때면 대신 매표업무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간혹 누군가가 알아보고는 “어머 여기 계셨군요!”하고 반기면 그의 얼굴에는 쑥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아주 가끔씩 이렇게 유명세를 치르지만, 그 때마다 어색하고 민망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범인(凡人)으로서, 매스컴의 플래쉬 세례와 주위의 관심이 때론 부담이지 않을까 싶다.
“직접 전화를 하거나 회사를 통해 종종 인터뷰 요청이 와요. 평범한 사람으로서 때론 남 앞에 나서는 게 왜 쑥스럽지 않겠어요. 하지만 주위 반응을 딱히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쓰죠.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또 그 모습에서 누군가가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자세로 지금까지 여러 번 대중 앞에 섰다. 재활치료를 마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성화 봉송을 시작으로, 한국시리즈 8차전 시구, 마라톤 5Km 완주, 2005년 겨울 킬리만자로 등정, 그리고 작년 제야의 종 타종까지. 장애의 몸으로 마운드에 서서 시구를 날리고 마라톤을 완주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여전히 바삐 뛰고 있는 열정의 두 다리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부르는 곳에 가진 모습 그대로를 보이며 우리 앞에 서 왔다. 장애가 생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고 싶은 소신의 발로였다.
“장애를 갖고 보니 전에는 나와 조금 다른 사람들로 여겨졌던 장애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장애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배나 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들에게서 더 용기를 얻었죠.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각자가 열심히 뛰어야겠지요. 저는 우선 장애인이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전철부터 시작하려구요(웃음).”
그는 지난 1월 12일 특별한 해돋이를 보고 왔다. 인천과 부천의 보육원 아이들을 초청해 전세열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 눈부신 태양을 보고 왔다. 어느 마음 좋은 독지가의 후원에 그가 자비를 보태 마련한 특별한 여행선물을 받고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 굳이 이유를 묻자 ‘그저 아이들이 좋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방학을 맞아도 여행 한번 갈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해를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문득 아이들과 함께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그가 빌었을 소망이 궁금해졌다.
“가족들 건강이죠. 의족을 의식하지 않는 두 아들과 내 몫까지 더 아파해준 아내, 그리고 건강하게 계셔주시는 어머니와 함께 무탈하게 살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큰 욕심 부리지 않는 성품 때문일까, 일상의 작은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때문일까. 감사하게도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그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그는 언제나 가지고 있다.

멈추지 않는 그만의 특급열차

 지금도 사람들은 그때 구해준 아이의 부모에게선 여전히 소식이 없느냐고 묻는다. 제 아이를 구해준 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질타의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럴 때마다 그는 대답한다. 수없이 걸려온 격려와 감사의 전화, 그 전화선 너머로 연신 고맙다며 떨림을 전하던 숱한 어머니들의 목소리 중 한 사람이 아니었겠느냐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 말을 들으니 아마도 그랬으리라, 말없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민의 발이 되어 인생의 절반을 열차와 동거동락한 김행균 씨. 자신의 10년 후를 묻자 “아직 퇴직 전일 테니 여전히 철도인 아니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퇴직 후인들 열차에서 내릴까. 그의 열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레일 위를 달리며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글/김혜경  사진/최경훈 기자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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