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서 비롯되는 학대 ‘방임’

<사례1>
일곱 살인 유진(가명)이는 어린이 집을 다녀오면 늘 혼자 집을 지킨다. 두 살 위의 언니가 있긴 하지만 학원에 들러 오후5시가 지나야 집에 오고 맞벌이하는 부모는 밤늦게나 얼굴을 볼 수 있다. 유진이는 이제 늘 혼자인 것이 익숙하다.

<사례2>
아홉 살인 지훈(가명)이는 키가 120cm밖에 안된다. 또래보다 한 뼘이나 작다. 끼니를 제 때 챙겨먹지 못한 탓이다. 마주치면 항상 싸우는 엄마, 아빠는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집은 몇 달째 청소를 하지 않은 탓에 벌레가 득실거리고 부엌에 쌓인 그릇엔 곰팡이가 쌓여 악취까지 난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학교는 거의 빠지기 십상이고, 또래 친구들도 지훈이를 늘 피해 다녀 혼자이다.

<사례3>
열한 살인 희경(가명)이는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2년 전 엄마는 생활고로 집을 나갔고, 아빠마저 자주 집을 비워 끼니는커녕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있긴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다.  

위의 사례들은 최근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기관에서 생겨난 방임사례이다.
이렇듯 아동방임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부모가 있지만 보살핌을 받지 못해 혼자 방치된 채 멍들어 가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 얼마 전 혼자 집을 보던 아이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도 이와 같은 ‘방임’에 의한 학대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비롯된 폐해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같은 방임의 경우 학대라는 인식이 높지 않아 그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보건복지부가 얼마 전 발간한 ‘2005년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 학대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형이 바로 ‘방임’이다. 무려 36.4%에 이를 정도.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방임을 ‘자신의 보호 감독을 받은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및 필요를 소홀히 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전국 아동기관으로 접수된 학대 신고 4663건 중 방임은 2416건. 아동학대의 대표적 유형이지만 신체학대나 성학대 등 직접적인 폭력에 비해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지금까지 사회의 외면을 받아왔다. 

이렇듯 아동방임은 학대의 가장 보편적인 유형인 셈이다. 아동 중 거의 매일 방임을 경험한 경우가 전체의 50%에 이른다. 2~3일에 한번 꼴로 방임이 발생한 경우는 2004년과 2005년 상반기 모두 70%를 넘었다. 방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아동학대 사망자의 40%가 방임으로 사망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업무 수행지침서에 따르면 방임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고의적 반복적으로 아동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써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 보호와 양육, 필요가 무엇인지 모호하며, ‘양육자의 의도성을 어떻게 가려내야 하나’라는 어려움이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서태원 팀장은 “아동방임은 크게 물리적 방임, 의료적방임, 교육적방임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아동이 생활하기 어려운 불결한 환경에 방치한 경우가 물리적 방임에 해당되고, 학교를 보내지 않거나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적절히 치료를 해주지 않는 것을 교육적 방임과 의료적 방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임의 위험성은 각종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모두 25명. 그 중 40%나 되는 9명이 방임으로 사망했다.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중앙아동전문기관 서태원 팀장은 “가장 치명적으로 위험한 경우는 물리적 방임이다. 12세미만의 저 연령 때 아동을 가정에서 그대로 무관심속에 방치하는데도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의료적방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종교적인 이유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2세 이하 유아들이 방임되면 성장실패 증후군 등과 같은 회복이 불가능한 발달 상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서 팀장의 지적이다.

저소득층· 해체가정의 방임비율 위험 수준

이 같은 아동방임은 경제적 형편과 함께 가정불화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이해피가정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맞벌이를 하더라도 넉넉한 가정에서는 아이를 어린이 집이나 학원 등에 보내지만, 형편이 안되는 가정에서는 아이를 혼자 내버려둔다. 집안에만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가정해체 역시 아동학대를 초래한다. 학대가정의 유형을 살펴보면 일반가정이 25.3%인데 비해 편부·편모 가정이나 이혼가정은 54.7%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편모가정(14.2%)보다 편부가정이 33.7%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편부가정의 비율이 가장 압도적인 이유를 전문가들은 홀아버지가 학력수준과 상관없이 적절한 양육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학대행위자중 친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해체가정이 많기 때문.

한 지역아동보호센터의 관계자는 “방임아동의 피해 신고가 한 달에 5~6건씩 들어오는데 대부분 편·부모 가정이고 빈곤가정이다. 그런데 지역 특성상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아이가 결석을 해도 선생님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학교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아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역사회 연계 통해 방임아동 보호해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동을 방임하는 행위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데도 부모가 자신의 역할이나 자녀의 발달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부부가 맞벌이라서 평소 자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면, 주말만이라도 아이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놀아 주는 등 애정을 쌓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쁜 부부들 중에는 주말에도 아이를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일부 아버지들은  직장 일로 피곤하다며 어머니에게만 자녀 양육을 맡기거나 자녀와의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방임에 속한다. 사소해 보이는 이 같은 생활 속 방임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아동 스스로 방임을 예방할 수는 없을까? 한 마디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방임을 당했을 때 아동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서태원 팀장은 “자녀들은 대개 부모님이 자신과 대화를 피하고, 애정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라며, “아동 스스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가치를 알려 줌으로써 ‘보호받고 사랑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키워줘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부모님께 자주 말을 걸고, 함께 놀아 줄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동 스스로가 방임을 예방하는 한 방법이다.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황옥경 교수는 “국가가 ‘찾아나서는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때 위험상황에 처한 아동을 보호할 수 있고 모든 아동에 대한 엄격한 보호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출산율증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각 지역 단위에서 방임 상황에 놓여있는 아이들을 먼저 발견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을 통해서 방임아동이 발견될 수 있지만 대부분 신고에 의한 센터의 구조 때문에 신고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하는 많은 아동들이 여전히 방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지적했다.

방임아동은 대개 너무 늦게 발견되고 발견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은 “현행 시스템이 전적으로 신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데 당국과 지역사회가 연계해 아동방임 가능성이 있는 가정을 직접 찾아가 관리하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아동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 등 ‘중장기 아동정책 및 국가행동계획”의 향후 추진방향을 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동방임, 결국 사회적 책임이다

부모가 있지만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방임아동’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들은 가혹한 학대를 받는 이상으로 정신적·신체적 상처를 입는다. 사회의 무관심속에 자라나는 이 아이들은 자신이 학대받는 것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우리사회 한구석에 방치돼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방임아동’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사회가 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그 고통이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폭력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아동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학대에 대해 살펴보겠다.

글·사진/박경미 기자 사진제공/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박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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