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 윤찬영 교수

 이번 국감에서 열린 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지난 달 29일 밝힌 바에 의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기금(이하 “기금”이라 칭한다)이 낮잠을 자고 있단다. 기금의 97%가 미집행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올해 조성된 1,325억 원 중 2.81%인 37억 원만 집행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234개 시ㆍ군ㆍ구 중 112곳은 아예 기금을 조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78개는 기금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았고, 34개는 조례는 제정해 놓고 기금은 조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기금을 정상적으로 조성한 기초자치단체가 5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금을 활용하여 빈곤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하는 인구가 그렇게 적다는 말인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지난 달 26일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대적인 종합적 복지대책 ‘희망한국21’을 발표한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관료주의 병폐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회복지법에서 정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사회복지법상의 의무 정도는 무시해도 이렇다 할 제제를 받지 않는다.

대개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의 경제적 개발과 성장을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여긴다. 복지에 관하여는 유권자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커다란 시설을 짓는 것에 주력한다.

시설 준공 기념식을 언론을 동원하여 성대하게 열고, 정치적 후원자를 장으로 앉히면 복지에 관한 한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치부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의 자활을 위한 기금을 관리하는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기금의 안정적인 관리일 것이다.

자활의 성공 같은 실적에 목적을 두기에는 돈의 회수에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활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보증인 등을 요구하게 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보증을 서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기금은 쓸 일이 별로 없게 된다.

그러니까 기금 조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물처럼 흘러 필요한 곳에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 기금이 그냥 고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향숙 의원은 우선 기금 매뉴얼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좋은 아이디어다. 그러나 공적으로 조성된 기금을 사용하는 데 단순히 매뉴얼로만 대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매뉴얼 이전에 법령으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금의 대출 조건으로 보증인이나 담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법규정을 두고 자활의지의 신실성과 현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하고 이에 근거하여 매뉴얼이 작성된다면 적절하리라 본다.

또 하나의 방법은 장의원도 주문하는 것인데 민간기관에 위탁하거나 민관협력을 통한 방법이다. 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은 시장에서의 능력이 미약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기금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이들이 자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활을 도모하고 자금을 상환할 수 있게 하려면 이것을 도와주는 책임능력이 있는 전문가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은 민간의 사회연대은행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저소득층의 창업을 지원해주는 전문가인 RM(Relationship manager)의 도움이 절실하다.

따라서 낮잠 자는 기금을 깨워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금조성과 총체적인 관리는 공무원이 하더라도 기금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자활의지를 심사하고 자활계획의 수립과 추진을 돕는 것은 민간의 전문가조직에게 위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혈의 구조를 생각해보자. 혈액을 수집하는 사람과 그 혈액을 치료에 투입하는 사람은 다르다. 기금 역시 그것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행정가와 필요한 곳에 사용하여 효과성을 나타내는 전문가는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없으면 기금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양극화 해소는 요원할 것이다              

오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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